시인
시인은 언제든지 물 곁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물 곁으로 가서 가만히 손을 넣어 물의 체온을 재는 사람이다.
시인은 언제든지 나무 곁으로 다가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가령 들메나무 곁으로 가서, 들메야, 하면서 가장 깊이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이다.
물의 속살을 만지면서,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신열이 높은지 낮은지 재고,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다.
물이 가만히 밀려올 때, 가슴을 열어 그 물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나무가 몸을 기울여 올 때, 가령 들메나무가 제 몸을 기대 올 때, 그 몸을 하나도 안 무겁게 척, 받아서 오래 서 있는 사람이다.
시인은 길을 걸으며 달의 이마를 짚고, 길의 맥박을 재는 사람이다.
달이 하늘에서 아래를 보며, 저기 달 한 덩이 길 위에 떠간다고 손가락을 가리키게 하는 사람이다.
별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참 많은 생각이 별처럼 돋아나는 사람이 저기 있다고 수근대게 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나이가 들면 서리를 모아 턱 밑에 붙이고, 눈을 모아 머리에 얹는 사람이다.
누가 저더러 시인이라고 하면, 시인은 무슨 얼어죽을, 하며, 꾸부정하게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이다.
몸이 붓이 되어 먼 길 걸어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