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
갈대와 억새를 분별하지 못 하던 시절을 지나,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분별하지 못 하던 시절을 지나.
나 한참 걸어와 이 강둑을 걷는다.
가을 속으로 길게 뻗은 길을 걸으며,
나 이제 고마리꽃을 보고 고마리꽃을 알고,
며느리밑씻개를 보고 며느리밑씻개를 알며,
물봉선을 보고 물봉선을 안다.
남근처럼 솟구친 수크령을 안다.
노을과 함께 저물며 낙동강 긴 제방길 걷는다.
쇠기러기며 물오리들 물가 모래톱에 앉아
오늘은 어디서 잘까 의논하는 사이,
노을은 강물에 담구었던 제 옷자락을 건져간다.
아, 분별의 덧없음이여.
내 분별 없었던 시절 이 강둑을 걸은 적 있으며,
내 몸이 길이며 물인 채로 저들과 섞였으나,
오늘은 저들과 섞이지 못 한 채
다만 홀로 걷는 강둑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