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리 일박
참 오랜만에 의성 탑리 오층석탑을 찾아가서
그간 잘 있었는가, 말을 걸었는데,
찬 하늘 속에 뻣뻣이 서서 대답이 없다.
왜 이러나, 하고 손을 잡으려는데,
몸을 외로 틀고 등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허, 하면서, 등 뒤로 다가가 안으려니,
짐짓 뿌리치며 한 발짝 내다앉는다.
얼핏 보아 멀쩡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까칠한 게 좀 여원 것 같기도 해서,
감실 깊숙이 체온계를 들이밀었다.
이마를 짚어보고 맥박을 재려는데,
재어 볼 테면 재라는 듯
심드렁히 겨드랑이를 치켜올렸다 내리고,
손목을 불쑥 내미는 모양이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것이 서운한가 보다.
천년 넘게 금성산 자락에 서서
세속의 풍상을 읽고 고개 끄덕일 나이에
별것도 아닌 일로 뭘 그리 삐치냐며,
두어 번 옆구리를 쿡, 쥐어박았다.
삼십칠 도를 훌쩍 넘어서는 붉은 눈금을 읽는데,
어찌 그리 전화도 한통 없냐며,
뭐 이상한 걸 들고 재고 짚어봐야 알겠냐며,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며,
해그는 짓이 천상 시인이 아니라
무슨 얼치기 돌팔이 의사 못지 않다며,
오늘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간다며,
막무가내 바지춤을 잡고 주저앉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