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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리 일박

 

참 오랜만에 의성 탑리 오층석탑을 찾아가서

그간 잘 있었는가말을 걸었는데,

찬 하늘 속에 뻣뻣이 서서 대답이 없다.

왜 이러나하고 손을 잡으려는데,

몸을 외로 틀고 등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허하면서등 뒤로 다가가 안으려니,

짐짓 뿌리치며 한 발짝 내다앉는다.

얼핏 보아 멀쩡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까칠한 게 좀 여원 것 같기도 해서,

실 깊숙이 체온계를 들이밀었다.

이마를 짚어보고 맥박을 재려는데,

재어 볼 테면 재라는 듯

심드렁히 겨드랑이를 치켜올렸다 내리고,

손목을 불쑥 내미는 모양이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것이 서운한가 보다.

천년 넘게 금성산 자락에 서서

세속의 풍상을 읽고 고개 끄덕일 나이에

별것도 아닌 일로 뭘 그리 삐치냐며,

두어 번 옆구리를 쿡쥐어박았다.

삼십칠 도를 훌쩍 넘어서는 붉은 눈금을 읽는데,

어찌 그리 전화도 한통 없냐며,

뭐 이상한 걸 들고 재고 짚어봐야 알겠냐며,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며,

해그는 짓이 천상 시인이 아니라

무슨 얼치기 돌팔이 의사 못지 않다며,

오늘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간다며,

막무가내 바지춤을 잡고 주저앉히는 것이었다.


김선굉 시집 제7집 75편 (2020년) 시선집

시선집은 그간에 펴낸 시집속에서 나름 발췌하여 뽑은 시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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