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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모의 노래

 

안녕 수련그리고 너의 친구들.

오늘은 비가 내리고,

비 내리듯 너에게 인사를 전한다.

어제는 꽃이 지는 걸 보았고,

석죽의 연한 꽃잎이었다.

지난해 가을이 생각나는지.

살 깊은 사과알이 뚝뚝 떨어져

시장바닥과 상점의 칸막이마다 마구 쌓일 때,

싱싱한 과육을 씹으면서

너희들은 살결이 고와지고 있었다.

그 해 겨울이 깊어갈수록

너의 맑은 두 눈은 연한 광채를 내면서

끝없이 깊어가고 있었고,

그먼 깊이로 가을이

긴 그림자를 끌고 무너지는 걸 보았다.

너희들이 그해 겨울을 보낸 뒤

손 시린 봄이 파랗게 다가왔다.

나는 목련이 지는 사월의 끝 어느 날,

한 여자를 생각하면서 울 뻔 했었다.

알게 될 거야 너도 커보면

어른이 어른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목련이 지고 있었다.

지금은 뜨거운 칠월.

문득 네가 그리워진다.

가슴살 부푼 널 이끌고

풍성한 과원을 찾으려 한다.

너는 이제 보게 될 거야.

따가운 가을 햇살이

그대로 과즙이 되는 눈부신 광경.

먼 구름까지 손을 뻗어

향기로운 물기를 휘어잡는 사과알들을.

너희들은 눈이 밝아져

지난해까지 보이지 않던

색실처럼 풀려내리는 영롱한 빛의 비,

무너지고 일어서는 한 떨기 풀꽃의 생리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고,

너희가 아직 잘 모르던

사랑의 미묘한 흔들림,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할 거야.

안녕 수련 그리고 너희 친구들.

멀어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오늘은 비가 내린다.


김선굉 시집 제7집 75편 (2020년) 시선집

시선집은 그간에 펴낸 시집속에서 나름 발췌하여 뽑은 시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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