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한 잔에 시 한 수로
방랑 같은 걸 꿈꿀 수 없는 시절을 산다. 밀란 쿤데라식의 느림은 얼마나 사치인가. 나는 신천대로가 끝나는 팔달교 부근이 꽉 막히기를 기대하며 차를 몬다. 차가 금호강 느린 흐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일 때, 나는 비로소 강을 굽어본다. 중금속으로 이제 얼음이 얼지 않는 강, 그 위를 걷는 겨울새의 처연함 같은 것. 거기 노을이라도 비칠라치면, 물결은 어린 아이처럼 몸을 움직여 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이다. 차는 느리게 움직이다 한참을 멈추어 선다. 버튼을 눌러 신중현의 새 앨범 김삿갓을 듣는다.
<천리 길 행장에 남은 일곱 푼을/ 들주막 석양에 술을 보았으니/ 어찌 하겠는가>
대체 술이며 풍경의 깊이는 어떻게 획득되는가 로큰롤은 신중현의 저항의 방식이며 유효해 보인다. 방법이 있다면 늙음 또한 두려워할게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세상을 술 한 잔에 시한 수로 건널 수 없음이여, 내 몸 또한 저 물과 같아서, 처음은 순결했으나 이제 마음의 가장 얕은 바닥조차 비출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