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젓대 하나로 바다를 다스리던
어진 사람이 그립다.
마디마디 기막힌 황죽의 마디마다
지공*을 뚫어가던
슬기로운 손이 그립다.
손끝으로 지공을 열고 짚으며,
영롱한 소리로 하늘 다스리던
슬기로운 숨결이 그립다.
만파만파(萬派萬派)그 소리 앞에
푸르고 너그러운 등을 보였나니,
누가 홀로 한 나라를 다스린다 하리.
감은사 절터에 낙엽이 지고,
바다 물결 거듭 밀려와
반도의 허리를 아프게 치는데,
천 년의 숨결 그 안에서 큰 울음 우는
크고 장엄한 황죽 하나.
푸른 동해에 비스듬히 몸 담그고
지공이 막힌 채 버려져 있다.
* 만파식적(萬波息笛) : 나라의 온갖 어려움을 잠재워 주는 신라의 전설상의 피리
* 지공(4음) : 다대금(大笒) 등 피리 종류의 악기에 뚫린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