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엘리베이터
어느 늦가을 자정을 넘긴 깊은 밤이었습니다. 동대구 국제오피스텔 2호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철학을 하는 한남자가 느닷없이 죽음이 몹시 두렵다고 했습니다. 눈 감으면 아름다운 인생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 아니냐며, 바보 같이 두 눈을 껌빽이며 나를 건너다보았습니다. 시를 더 잘 써야 할 것 아니냐며, 자꾸 뭘 본 걸 쓰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은 김 형이 보는 방식으로 그걸 보게 되는 것 아니냐며, 그러면 재미가 적을 것 같다며, 대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든가, 아니면 시 자체가 하나의 낯설고 새로운 세계가 되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더 좋은 시를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꽃 피는 것, 낙엽 지는 것, 눈 내리는 것 보며, 때로는 고스톱도 치고, 괜찮은 여자를 만나기도 하면서 오래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어버리면 모든 게 그만 아니냐며, 나를 멀끔이 건너다보는 것이었습니다. 1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날 밤 그의 말을 엿들은 엘리베이터가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탈 때마다그 철학자는 어디 갔느냐며, 인생이 무어냐며, 인생이란 게 정말 아름다운 거냐며, 고수톱은 또 뭐냐며, 그리고 내게는 시를 쓰는 사람이냐며, 시가 뭐냐며, 시를 잘 쓰고 있느냐며, 자꾸 말을 걸어오는것이었습니다. 그 늦은 가을밤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빅연규가 생각날 때면 괜히 인생, 죽음, 시, 연애, 고수톱, 철학, 아나키, 뭐 이런것들이 연상되는 병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