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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엘리베이터

 

어느 늦가을 자정을 넘긴 깊은 밤이었습니다동대구 국제오피스텔  2호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철학을 하는 한남자가 느닷없이 죽음이 몹시 두렵다고 했습니다눈 감으면 아름다운 인생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 아니냐며바보 같이 두 눈을 껌빽이며 나를 건너다보았습니다시를 더 잘 써야 할 것 아니냐며자꾸 뭘 본 걸 쓰는데그러면 다른 사람은 김 형이 보는 방식으로 그걸 보게 되는 것 아니냐며그러면 재미가 적을 것 같다며대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든가아니면 시 자체가 하나의 낯설고 새로운 세계가 되도록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살아 있는 동안 더 좋은 시를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꽃 피는 것낙엽 지는 것눈 내리는 것 보며때로는 고스톱도 치고괜찮은 여자를 만나기도 하면서 오래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죽어버리면 모든 게 그만 아니냐며나를 멀끔이 건너다보는 것이었습니다. 12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그 날 밤 그의 말을 엿들은 엘리베이터가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내가 탈 때마다그 철학자는 어디 갔느냐며인생이 무어냐며인생이란 게 정말 아름다운 거냐며고수톱은 또 뭐냐며그리고 내게는 시를 쓰는 사람이냐며시가 뭐냐며시를 잘 쓰고 있느냐며자꾸 말을 걸어오는것이었습니다그 늦은 가을밤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빅연규가 생각날 때면 괜히 인생죽음연애고수톱철학아나키뭐 이런것들이 연상되는 병을 얻었습니다.


김선굉 시집 제7집 75편 (2020년) 시선집

시선집은 그간에 펴낸 시집속에서 나름 발췌하여 뽑은 시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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