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욱을 생각함
바람은 만뢰(萬籟) 를 거느린다.
가을 속을 깊이 흐르는 강.
물길은 여윈 갈대의 허리를 자욱이 스치고,
에이는 듯 오늘은 내 발목이 시리다.
한 뜻을 세우고 굳게 껴안아도
시간과 더불어 그대 또한 홀로 서 있을 뿐.
이윽고 한 생애가 깊이 무릎을 꺾으면,
또 낯선 한 생애가 눈부시게 있을 것을 믿는다.
바람은 갈대의 수만큼 가늘게 흩어져
깊은 가을의 전모를 일별하고,
우리의 겨울 근처에서 굳건히 뭉쳐 울 것이니,
내 한 소인으로 정직하게 떨며
그 소리를 듣겠다.
바람은 해인연가*의 이루 못 헤아릴 깊은 수심.
넘실 기우는 사랑을 껴안으면
뜻 없는 한 오리 바람이 일어
그대의 서리 묻은 모발이 남녘으로 기운다.
* 해인연가(海印戀歌) : 송욱(宋稶 1925~1980)의 연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