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
오리들이 물에서 시를 놀고 있네
이하석
오리들이 모여서 뭘 하며 놀았는지, 돌아본다. 별로 시끄럽진 않았던 듯하다. 몇 마리가 모여 놀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머릿수가 슬금슬금 늘었다. 지금 세어보니 스물 네 마리나 된다. 처음 몇 마리가 모였을 땐 소리 별로 안 나게 시끄러웠다. 언제든 쉬 모이고 잘 돌아다녔다. 열 명이 넘고 스무 명이 넘어가니, 어느덧 많은 입들 떠들썩한 소리가 담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듣는 이가 생기는 듯 하고, 그걸 우려했음인지 더욱더 크게 소리내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많으니 놀고지비도 있지만, 가고지비도 있게 마련이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면 조근조근 노닥거리다가 재빨리 뿔뿔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경우도 잦아졌다. 더러 삼삼오오 이리저리 다니는 순례행각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오리들이 모여서 노니, 물가에서 손가락질하는 이도 생기고, 누군가는 돌을 던지기도 해서 아이쿠 이게 웬 일이냐는 듯 젊잖은 척 혜엄치며 사람들 안 보이는 구석으로 미끄러져 들기도 했다.
오리들의 모임은 울타리가 없다. 회장도 없고 회비도 없애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경계가 분명치 않은 건 아니다. 끈끈한 정의 점맥으로 경계표시를 해왔다. 오리라는 말은 가벼워서 좋다. 동동 떠서 잘 돌아다니는 소리 아닌가. 그 말을 하는 이의 마음을 동동 뜨게 한다. 오리란 가는 게 아니라 오는 것이고, 십리의 반이며, 수면에 노니는 오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오는 것도 좋고, 십리의 반도 좋지만, 물에 뜨는 오리의 그 유연한 유영이 좋다. 보이지 않는 물 아래 발길질도 만만치 않다.
기실 오리들 모두 만만치 않다. 그러니 오리들이 모인곳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괜히 허세를 부리거나 아는 척 하다가는 이내 핀잔을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이 모임에선 누구든 글 쓰는 흉내를 내거나 글 씁네하고 허장성세를 드러내는 일이 없다. 글은 당연히 쓰는 것이고, 언제나 치열하게 민감하게 쓰는 것이다. 그 일만은 게을리할 수 없다. 우리의 만남이 그렇게 하게 만든다. 그런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게 참 희안한 일이 아니고 뭔가? 우리가 주고 받는 말과 몸짓들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 밀착되어 나타나고, 진정성을 띠는 것으로 교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게 얼마나 참한 일인가? 그런 태도가 지속되는 한 오리들의 모임은 늘 신선하고 매혹적이다. 오리들 서로 서로가 눈이 부시다. 스무 해를 함께 보낸 흔적을 이렇게 담는다. 우리는 물에 그냥 떠 다니지 않았다. 놀고 먹지 않았다. 그걸 이 앤솔로지는 보여주리라. 아름다운 만남이 치열한 접전이기도 해 서로 끌어당기고 치켜올리는 일임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부딪치며 융화되고 서로에게 순치되어왔고 되어갈 것이다. 이 앤솔로지가 담은 건 그런 전망을 담은 각자의 붉은 각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