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들
온산유화공단의 저 굴뚝들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라는 굴뚝들, 지상에서 가장 절실한 몸짓으로 외팔을 쳐들었다. 가장 높이 쳐들 수 있는 데까지, 저의 가능성과 한계를 다해······
굴뚝들, 제 팔을 너무 쳐든 나머지 한쪽 팔만 남았다. 공장들은 저 굴뚝들 때문에 아주 어깨가 삐딱해지거나, 힘을 다해 용쓰느라 핏줄들까지 툭, 툭, 불거져 나온 게다.
불꽃을 태우는 굴뚝도 있다. 낮엔 그저 이글거리는 손짓으로만 보였을 굴뚝 끝의 화염, 밤 되어 어두워지자, 붉고 투명한 불꽃의 손바닥은 더욱 선명하고 애처롭게 흔들린다. 춤추는 불꽃의 손가락들은 파랗게 질려있기도 하다.
나를 봐주세요! 그대여! 제발, 제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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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들 산업도로
읍의 북녘에는 들판을 가로질러
산업도로가 지나간다
궤양을 앓는 자의 위장처럼
저 콘크리트 포장길은
한없이 늘어지고 지쳐 있다
가로수들을 보면
그 길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길이 저녁 때면 차들로 가득 찬다
신호등이 지루하게 깜박거리지만
차들은 도무지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멀리서 보면, 붉은 미등들은 길게 늘어져서
아득하기까지 하였다
밀려 있는 차들의 꽁무니를
속도를 다해 달려오던 트럭이 들이받아
한 달이면 서너 건씩,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차들은 형편없이 구겨지거나.
트럭 밑으로 깔려버리기도 한다
가끔씩 불이 날 때도 있다
읍의 사람들은
그 길의 속도와 질주의 무서움을 안다
경운기와 자전거는 그 길에서는 절대 금지다
용감한 오토바이가 가끔씩 그 길을 달리지만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유령 같은 차들만 검은 유리를 두른 채
그 길을 달린다
길가에는 지친 가로수들이 있지만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그러나 때로 정말 아득하게,
길을 건너려는 늙은 노파의 구부러진 허리를
그 길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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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저물도록,
그녀는 일 마치고 나올 줄 모르고, 기다리는
사내 앞으로, 추억처럼 차들이 흘러갔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성냥개비를 길가의 도랑에다 휙,
던져 버린다, 시궁창이 잠깐. 비친 듯
그것을 찌르지 못하고, 성냥개비는 옆으로 눕는다
뜬 채 고정되어,
아까부터 조금 떨어진 미루나무 뒤에 숨어 있던
번들거리는 검은 고동색 반코트의, 딱딱한 표정을 가진 '헬멧' 이
성능 좋은, 그러나 조금은 낡은 오토바이 옆에서
힐끗, 이쪽을 보았지만
다시 못 본 척, 가죽장화 발로 타이어를 툭, 차본다
다시, 그는 담배가 다 탈 때까지 공장 담벼락에
기대서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려 본다
골목 입구의 가게에서 심부름 온 계집아이 하나
손에 담뱃갑과 동전을 들고 나오다가
화들짝. 놀란 듯 멈칫거렸으나, 이내 종종걸음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참기 힘든 듯, 경찰은 신경질적으로 시동을 걸고는
산업도로 방향으로 황급히 사라져 버리고, 이윽고
사내 혼자 남는다. 키 큰 나무들이 더 높은 공중으로 떠오르고
발밑의 잡초들은 수북이 부풀어 오른다.
시간은 그렇게 하염없이 늘어지기만 하고,
허기진 공복은 한 사발의 냉수처럼 쓸쓸하다
나무들은, 누렇게 뜬 잎을 버리지도 못한 채
허공에 매달려 있다. 형벌의 팔들을 가까스로 들고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피가 말라, 여원 껍질만 비틀린 채
제 몸 하나 눕힐 자유마저 없이!
어쩌면 일생을, 그녀는
일마치고 나올 줄 모르고, 기다리는
사내 앞으로, 추억처럼 차들이 흘러갔다
엄원태/1955년 대구에서 태어나 199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하다.
시집「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물방울 무덤」 등을 출간하고, 대구시협상, 김달진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