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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Name 그리운, 강 · 시월 · 달의 門下

그리운,

 

강은 세속도시의 종말 처리장을 휘감아 돌고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가는 먼 길이

길게 흰, 수로를 따라

다급하게 풀린다

 

용케 추슬러낸 몇 소절 노래도 삭아

 

더는 흐르지 못할 끈적한 욕망의 진창

또 어떤 격렬함으로 강은 저리 부푸는가

 

잡풀들의 아랫도리가 툭, 툭 부러지면서

 

익명의 새떼들만 취수탑 근처를 날고

마침내 뺄물 아래 아득히

혓바닥을 묻는,

 

***

시월

 

바람은 넘실넘실 벼논을 먹어간다

 

이랑이랑 일렁이며 윗배미서 아랫배미로

한 입씩 베어물었다 되뱉느니, 저 금빛!

 

햇볕은 또 햇볕대로 태금이라도 하려는 듯

종일을 들명나명 체질하는 시늉이다

감흙을 받아낸 봇물도 한결 누긋해지고

 

하늘에 깔아놓은 새털구름도 그렇지만

이제 더는 애운할 일 잰걸음 칠 일도 없이

짯짯한 인연의 여울터, 물살이나 볼 일이다

 

 

*******

 

달의 門下

 

나는 달의 門下

 

달은 높이 떠 있으므로

 

차면 기우나니,

 

따라잡지 못할 강론

 

한번도 강림한 적 없으되

 

늘 내 곁에 가득한 달

 

진흙 수레를 끌고

 

홀로 가는 九萬里 長天

 

오직 달빛만이

 

가르침의 전부인 것

 

물 속에 잠겼다고 보는가,

 

그마저도 中天인 것

 

초사홀 달이 초나흘 달을 위해

 

초이레 달이 초여드레 달을 위해

 

조금씩 베어 먹던

 

그늘을 남겨 두느니,

 

건너간 하늘 길섶에

 

먹물 장삼 한 벌

 

박기섭/1954년 대구 달성 마비정에서 태어나 1980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다.

시집 키작은 나귀타고默言集 비단 헝겊,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 엮음 愁心歌 등을 출간하다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오늘의 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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