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처럼
뜯어먹다 만 구름이 저문 하늘에 떠 있다
중절모 쓴 사내는 짐자전거 뒤에 양철 다라이 붙이고
며칠째 길모퉁이에 서 있다 가끔 생각난듯
흰설탕 떠넣고 열심으로 페달 밟는다
아이가 젓가락에 감긴 분홍빛 속살 뜯어먹는 저녁
가슴에 띠 두른 한 무리 아낙들이 지나가고
허물다만 담벼락 아래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국화는 목침만한 꽃 달고 낑낑거린다
저문 하늘에 아이가 뜯어먹다만 구름이 떠 있다
불어터진 추억의 저녁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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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되고 싶은 나
꽃이 새가 될 수 있다면
나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돌멩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땅따먹힌 땅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검은 비닐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오색 풍선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구름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자유가 자유를 그리워하듯
그대가 눈물뿐인 사랑을 끌어안듯
새가 비로소 새가 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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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나무의 추억
나는 꽃 피는 몸나무이다
한 번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의 추억이다
새로 어린 나무를 옮겨 심은 뒤
물을 뿌리며 나도 꽃 피던 몸나무인가
딱딱한 껍질 초록 이빨로 깨물어
연한 기쁨의 상처 만드는
나무는 즐거울거야. 내 몸도 덩달아
잎 밀어낼거야. 수돗물에서
외눈박이 도깨비들 투당탕
튀어나온다, 없는 손마다 페놀방망이
수은방망이 납방망이 카드뮴방망이 들고
닫힌 집들의 창자 요란스레
두들기고 다니는
몸이 가렵다. 부스럼딱지가 숭숭 돋고
손톱이 할퀴고 간 꽃진 자리마다
희디흰 거품피가 묻어난다
마음의 문고리 흔드는
한때 꽃 피던 몸나무의 시절은
六角水의 집인가
무지막지한 시간에 屍姦당한
쿵쾅 도깨비가 뛰어다니는
봄에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는
꿈꾸는 힘으로 버팅긴다
박진형/1954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198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다.
시집 「몸나무의 추억」, 「풀밭의 담론」, 「너를 숨쉰다」, 「퍼포먼스」, 사인시집 「머리를 구름에 밀어넣자』 등을 출간하다.
대구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