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Extra Form
Title Name 저녁밥처럼 · 새가 되고 싶은 나 · 몸나무의 추억

저녁밥처럼

 

뜯어먹다 만 구름이 저문 하늘에 떠 있다

중절모 쓴 사내는 짐자전거 뒤에 양철 다라이 붙이고

며칠째 길모퉁이에 서 있다 가끔 생각난듯

흰설탕 떠넣고 열심으로 페달 밟는다

아이가 젓가락에 감긴 분홍빛 속살 뜯어먹는 저녁

가슴에 띠 두른 한 무리 아낙들이 지나가고

허물다만 담벼락 아래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국화는 목침만한 꽃 달고 낑낑거린다

저문 하늘에 아이가 뜯어먹다만 구름이 떠 있다

불어터진 추억의 저녁밥처럼

 

************

새가 되고 싶은 나

 

꽃이 새가 될 수 있다면

나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돌멩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땅따먹힌 땅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검은 비닐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오색 풍선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구름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자유가 자유를 그리워하듯

그대가 눈물뿐인 사랑을 끌어안듯

새가 비로소 새가 되듯

 

 

**********

몸나무의 추억

 

나는 꽃 피는 몸나무이다

한 번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의 추억이다

 

새로 어린 나무를 옮겨 심은 뒤

물을 뿌리며 나도 꽃 피던 몸나무인가

딱딱한 껍질 초록 이빨로 깨물어

연한 기쁨의 상처 만드는

나무는 즐거울거야. 내 몸도 덩달아

 

잎 밀어낼거야. 수돗물에서

외눈박이 도깨비들 투당탕

튀어나온다, 없는 손마다 페놀방망이

수은방망이 납방망이 카드뮴방망이 들고

닫힌 집들의 창자 요란스레

두들기고 다니는

 

몸이 가렵다. 부스럼딱지가 숭숭 돋고

손톱이 할퀴고 간 꽃진 자리마다

희디흰 거품피가 묻어난다

마음의 문고리 흔드는

한때 꽃 피던 몸나무의 시절은

六角水의 집인가

 

무지막지한 시간에 屍姦당한

쿵쾅 도깨비가 뛰어다니는

봄에도······ 꽃 피지 않은······ 몸나무는

꿈꾸는 힘으로 버팅긴다

 

박진형/1954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1985(매일신문신춘문예, 1989현대시학으로 등단하다.

시집 몸나무의 추억, 풀밭의 담론, 너를 숨쉰다, 퍼포먼스, 사인시집 머리를 구름에 밀어넣자등을 출간하다.

대구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Title Name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 | 이하석 | 책 머리에 file 오리들이 물에서 시를 놀고 있네 관리자 2020.08.17 3
27 차 례 관리자 2020.08.17 3
26 | 김선굉 편 | 너는 붉게 흐른다 · 콘트라베이스 · 술한 잔에 시 한 수로 관리자 2020.08.17 5
25 | 김세진 편 | 방울실잠자리 · 새벽, 숲에 들다 · 그림자의 길 관리자 2020.08.17 4
24 | 김호진 편 | 스좌좡 가는 길 · 寧國寺에서 · 나는 이미 탑이다 관리자 2020.08.17 3
23 | 문무학 편 | 잠-코의 시간 · 달과 늪 · 비비추에 관한 연상 관리자 2020.08.17 4
22 | 문인수 편 | 각축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쉬 관리자 2020.08.17 4
21 | 문형렬 편 | 언제나 갈 수 있는 곳 · 봄꿈 · 꿈에 보는 暴雪 관리자 2020.08.17 5
20 | 박기섭 편 | 그리운, 강 · 시월 · 달의 門下 관리자 2020.08.17 3
» | 박진형 편 | 저녁밥처럼 · 새가 되고 싶은 나 · 몸나무의 추억 관리자 2020.08.17 4
18 | 서담 편 | 양수리-여의도, 차창 밖의 시퀀스 5 · 때론 폭주족이고 싶다 · 환생 관리자 2020.08.17 3
17 | 서대현 편 | 아내考 7 · 유리벽 속 거미줄 · 그림자 6 관리자 2020.08.17 4
16 | 송재학 편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흰뺨검둥오리 · 닭, 극채색 볏 관리자 2020.08.17 4
15 | 엄원태 편 | 굴뚝들 · 북녘들 산업도로 ·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관리자 2020.08.17 5
14 | 윤일현 편 | 어머니와 소풍 · 장마철 · 김천댁 관리자 2020.08.17 4
13 | 이동백 편 | 살레 지나 운문사 가는 길 · 어라연 · 靑山島 관리자 2020.08.17 4
12 | 이동순 편 | 마왕의 잠 1 · 양말 · 아버님의 일기장 관리자 2020.08.17 6
11 | 이무열 편 | '사이' 라는 말 · 겨울나기 · 어떤 흐린 날 관리자 2020.08.17 4
10 | 이유환 편 | 낙타 · 감자꽃 · 용지봉 뻐꾸기 관리자 2020.08.17 3
9 | 이정환 편 | 千年 · 獻詞 · 別辭 관리자 2020.08.17 4
8 | 이종문 편 | 봄날도 환한 봄날 · 눈 · 선풍 관리자 2020.08.17 3
7 | 이하석 편 | 투명한 속 · 초록의 길 · 늪 관리자 2020.08.17 5
6 | 장옥관 편 | 달의 뒤편 · 눈꺼풀 · 입술 관리자 2020.08.17 4
5 | 장하빈 편 | 밥통 · 개밥바라기 추억 · 어머니 관리자 2020.08.17 3
4 | 조기현 편 | 매화도 1 · 아침 연못 · 암곡 오동꽃 관리자 2020.08.17 3
3 | 김양헌 편 | 1990년대 시읽기의 방법적 시론 불상유통(不相流通)/동기감응(同氣感應 ) 관리자 2020.08.17 6
2 | 박진형 | 책 뒤에 시오리 20년의 알리바이 관리자 2020.08.17 4
1 만 / 인 / 시 / 인/ 선 만 / 인 / 시 / 인/ 선 관리자 2020.08.17 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