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실잠자리
습지에 비가 왔다 사나흘 이어졌다
우화를 막 끝낸 것, 채 끝내지 못한 것들
갈대를
베어 문 바람
서걱서걱 울고 있다
두어 시간 날이 들면 연해 날개를 털고
암컷의 유혹과 경계의 동시성을 띤
새하얀
방울소리만
소택지에 낭자하다.
바르르 치떠는 날개, 마지막 구애를 한다
배끝 관상돌기 연신 부풀어 오르면
서둘러
물풀 사이로
꽁지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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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숲에 들다
1.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는 참나무 그루터기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모롱이 저만치
열이레
허연 달빛이
더듬어 갔을 그 길
2.
애써 엿보지 않는다, 새벽 백양나무 숲길
적막을 다스리는 오랜 침잠의 시간
열매 익히며
홀로 푸르러 가는
3.
산길을 기우뚱하니 떠받치는 하얀 뼈대들
메마른 껍질들이 툭툭 터져 내리는
늦은 봄
그 숲 여백 속
나무 한 그루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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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길
더 내어줄 것이 없는
빈 몸이 만들어낸
은행나무 긴 그림자는 양성 굴광성이다
길의 끝
불빛을 향해
더듬어 가는 촉수들
밤새 보도블록 따라 촘촘히 놓인 길을
지그시 밟고 갔을 지치고 쪼그라든
길게 휜 눈썹
새벽을 밀고 간다
김세진/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교육대학교, 경북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으로 등단하다. 시조집 「메타세쿼이아에게」, 「점자블록」을 출간하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