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Extra Form
Title Name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흰뺨검둥오리 · 닭, 극채색 볏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에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바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

흰뺨검둥오리

 

그 새들은 흰 뺨이란 영혼을 가졌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에서 흰색까지 모두

이 늪지에선 흔하디흔한 맑음의 비유지만

또 흰색은 지느러미 달고 어디나 갸웃거리지

흰뺨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 소리는 내 몸 속에서 먼저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만으로 늪은 흘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흰뺨검둥오리가 떠매고 가는 것이 이 늪을 포함해서

반쯤은 내 영혼이리라

지금 늪은 산산조각나기 위해 팽팽한 거울

수면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가 반듯해지네

 

 

*********

, 극채색 볏

 

볏을 육체로 보지 마라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

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

계관이란 떨림에 매달은 錘이다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감옥이다

극지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낙타의 혹처럼, 숨표처럼

볏이 더 붉어지면 이윽고 가뭄이다

 

송재학/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졸업하다. 1977<매일신문> 신춘문예. 1986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다. 시집 얼음시집, 살레시오네집,푸른 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기억들, 진흙 얼굴, 산문집 풍경이 비밀을 출간하다.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대구문학상을 받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Title Name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 | 이하석 | 책 머리에 file 오리들이 물에서 시를 놀고 있네 관리자 2020.08.17 3
27 차 례 관리자 2020.08.17 3
26 | 김선굉 편 | 너는 붉게 흐른다 · 콘트라베이스 · 술한 잔에 시 한 수로 관리자 2020.08.17 5
25 | 김세진 편 | 방울실잠자리 · 새벽, 숲에 들다 · 그림자의 길 관리자 2020.08.17 4
24 | 김호진 편 | 스좌좡 가는 길 · 寧國寺에서 · 나는 이미 탑이다 관리자 2020.08.17 3
23 | 문무학 편 | 잠-코의 시간 · 달과 늪 · 비비추에 관한 연상 관리자 2020.08.17 4
22 | 문인수 편 | 각축 · 채와 북 사이, 동백 진다 · 쉬 관리자 2020.08.17 4
21 | 문형렬 편 | 언제나 갈 수 있는 곳 · 봄꿈 · 꿈에 보는 暴雪 관리자 2020.08.17 5
20 | 박기섭 편 | 그리운, 강 · 시월 · 달의 門下 관리자 2020.08.17 3
19 | 박진형 편 | 저녁밥처럼 · 새가 되고 싶은 나 · 몸나무의 추억 관리자 2020.08.17 4
18 | 서담 편 | 양수리-여의도, 차창 밖의 시퀀스 5 · 때론 폭주족이고 싶다 · 환생 관리자 2020.08.17 3
17 | 서대현 편 | 아내考 7 · 유리벽 속 거미줄 · 그림자 6 관리자 2020.08.17 4
» | 송재학 편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흰뺨검둥오리 · 닭, 극채색 볏 관리자 2020.08.17 4
15 | 엄원태 편 | 굴뚝들 · 북녘들 산업도로 ·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관리자 2020.08.17 5
14 | 윤일현 편 | 어머니와 소풍 · 장마철 · 김천댁 관리자 2020.08.17 4
13 | 이동백 편 | 살레 지나 운문사 가는 길 · 어라연 · 靑山島 관리자 2020.08.17 4
12 | 이동순 편 | 마왕의 잠 1 · 양말 · 아버님의 일기장 관리자 2020.08.17 6
11 | 이무열 편 | '사이' 라는 말 · 겨울나기 · 어떤 흐린 날 관리자 2020.08.17 4
10 | 이유환 편 | 낙타 · 감자꽃 · 용지봉 뻐꾸기 관리자 2020.08.17 3
9 | 이정환 편 | 千年 · 獻詞 · 別辭 관리자 2020.08.17 4
8 | 이종문 편 | 봄날도 환한 봄날 · 눈 · 선풍 관리자 2020.08.17 3
7 | 이하석 편 | 투명한 속 · 초록의 길 · 늪 관리자 2020.08.17 5
6 | 장옥관 편 | 달의 뒤편 · 눈꺼풀 · 입술 관리자 2020.08.17 4
5 | 장하빈 편 | 밥통 · 개밥바라기 추억 · 어머니 관리자 2020.08.17 3
4 | 조기현 편 | 매화도 1 · 아침 연못 · 암곡 오동꽃 관리자 2020.08.17 3
3 | 김양헌 편 | 1990년대 시읽기의 방법적 시론 불상유통(不相流通)/동기감응(同氣感應 ) 관리자 2020.08.17 6
2 | 박진형 | 책 뒤에 시오리 20년의 알리바이 관리자 2020.08.17 4
1 만 / 인 / 시 / 인/ 선 만 / 인 / 시 / 인/ 선 관리자 2020.08.17 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