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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Name 살레 지나 운문사 가는 길 · 어라연 · 靑山島

살레 지나 운문사 가는 길

 

굽은 길이 마음을 편다면

 

운문사 가는 길 잡겠네

가난한 물줄기들

골짝마다 떠나와

잔기침 한 번 없이 내를 이뤄 모여드네

서툰 종이학 접듯 산허리 눌러 오르면

벽에 갇힌 물줄기

피멍든 수면 이루겠네

그 위로 달이 뜨고 별이 지고

산세상 어우러지는지

막힌 길을 흐름으로, 흐름을 다시 막아

산문이 보인다면

산 아랫마을쯤 서성이겠네

밤마다 물을 거르는 체소리 열리고

떠나간 발자국 벗어놓은 모래알

달빛처럼 쌓이겠네

()도 속()도 모르면서

경계의 그늘에 앉아

법고 소리에 숨을 죄겠네

굽은 마음 어디에도 눕힐 수 없다면

귀를 숙여 더부살이하겠네

 

*****

어라연

 

길이란 길 죄다 얼어붙어 그대에게 끓었던가

 

진눈깨비 오래도록 나를 위해 내렸던가

철없는 세상 잠들면 눈은 다시 내리고

동강 맑은 물 흐르는 술병 속 밤새 뒤척인다

젖은 신발끈 풀린 어느 바람 매운 날

가랑잎처럼 쓸리다 다시 만날까

세상의 모든 길 죄다 녹아 발걸음 글썽인다

 

*****

靑山島

 

길은 무덤에서 끝나 있다 집을 떠난 새들이 바람 속에 길 없는 길을 물을 때 물오리나무에서 죽비 소리가 쏟아진다. 늙은 상수리나무 손가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강물 세상에서 미처 이름을 얻지 못하고 내 속에서 흩어진 글자들 답답한 듯 돌아눕는다. 물소리가 깊어지는 밤이면 산이 가끔 내려와 못다 푼 수수께끼를 푼다. 이제 그만 내려가라고 몸을 턴다. 산도 강도 오래 누우면 따스한 무덤이라고 나는 바람 속에 집을 세우고 돌아눕는다.

 

이동백/1955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다.

1996현대시로 등단하고, 시집 수평선에 입맞추다를 출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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