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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Name 시오리 20년의 알리바이

시오리 20년의 알리바이

 

박진형

1.

80년대 후반, 대구 문학판에 얼굴을 내민 오리(처음엔 오리였으나 자연스레 시오리로 불렸다)는 이단과 반역의 앙광테리블이었다. 어떤 담론의 생산도, 어떤 문학적 포즈나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과 음악, 퍼포먼스 등 인접예술과 소통하면서 문학의 본질적 실천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시오리는 한마디로 자유 방임이다. 어떤 강제나, 어떤구속도 없다. 에꼴의 동인이 아닌 자유로운 시회()이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하나로 결집되는 강한 표면 장력을 지녔다. 시오리는 문학지나 메스컴에 공식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 은밀하게,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간 우리는 여러 차례 시와 그림전을 열었고, 너뎃 권의 시오리란 이름으로 소식지도 펴냈다. 제대로 된 선집은 내지 않았다. 문단 정치에 대한 혐의를 받기 싫어서였다. 보수적인 대구 문단 풍토 속에서 우리는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비로소 자선집 오리 시집을 묶는다. 우리가 걸어온 스무 해의 흔적과 공과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간 내부에서 불꽃 튀기는 문학적 격론을 펼쳤고, 때론 다른 견해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서로 격려하고 부축한 20년이 끈끈한 인간적 유대로 묶여져 왔다.

 

2.

시오리는 198812월 이하석 시인을 필두로 문인수. 김선굉, 서대현, <오늘의 시> 동인(송재학, 장옥관, 박진형, 엄원태)이 모였다. 뒤이어 이동순, 문무학, 박기섭. 조기현 시인이 가세한다. 스타디 그룹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모였다. 한 시간 남짓 발제와 토론이 끝나면 심심파적 일탈과 한담을 즐겼다. 뒷 풀이 잡기로 바둑패와 고스톱패로 나뉘어 혈기왕성한 모임은 날밤을 지샌다. 그러면서 저 시인이 어떤 시를 씨고 있는가,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면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곁눈질하고 탐색하면서 서로에게 문한적 에너지를 충전받았다.

 

김선굉 시인이 현대시학(19912)오리를 발표하였다. 그 전문을 보자.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노는 게 그리 즐거우냐고.

강변 매운탕집의 젖은 뒤뜰을 걷고 있는 오리 떼,

가만히 보니 저들은 어색한 부리와 갈퀴의 발을 가졌다.

대문을 넘나들면서, 마루와 축대를 오르내리며,

숨가쁘게 뛰놀던 내 어린 모습이 저리 어색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이윽고 묻지 않으셨다.

가만히 바라보시거나 무심히 눈을 거두시며, 저만치 마루의 한 끝에 앉아 계셨다.

오리는 젖은 뒤뜰을 뒤뚱거리며,

합죽한 주황색 부리를 모가지 끝에 달고, 고개를 아래 위로 주억거리거나,

부리를 날갯죽지 깊숙이 쳐박으며, 몇 발짝 안을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는 서른에 일본의 후쿠오카현 광산 근처의 작은 함바에서

일흔여 명의 한국인 인부를 거느린 오야가다였다. 긴상,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서 오리를 보셨을까.

일본 오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뒤뚱거리며, 오하이오 고자이마쓰.

그런데 어떻게 허리를 다치셨을까.

국방색 모포 위로 한 판의 화투가 완성되어 가고,

말은 고도리를 할 것 같다.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오롯이 그의 손 안에 앉아 있다.

갈퀴 대신에 엑티브 상표의 운동화를 신고,

뒤뚱거리며 강변 나루터 근처 식당에 와서,

나는 메기의 깊은 살점을 뜯고 있다.

아버지는 스물세 해 전, 그 해 여름의 무더위 속으로 가셨다.

지금은 칠월의 저물 무럽. 푸른 낙동강을 지척에 두고,

오리란 놈들은 그 위에 둥둥 몸 띄울 줄 모른다.

아버지, 죽음이란 어찌면 푸른 강물 위에 몸 둥둥 띄우는 것일까요.

아니면 죽음이란 그만 끝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인지요.

주황색 바지에 흰 샤츠를 받쳐 입고서,

갈퀴 대신에 운동화를 꺾어신은 채,

뒤뚱거리며 오리 곁에 선 내 모양이 저 오리처럼 어색한지요.

집에서 사무실로. 다방으로, 서점으로, 술집으로.

어떤 때는 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구미를 지나 김천까지, 조치원까지 갔다가는

쏠쓸한 정처로 돌아온 일이 있다.

저 푸른 강물 위에 둥둥 몸 띄울 생각조차 않는 오리처럼 나는 어느 定處로 가게 될른지.

뒤뚱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팩팩거리며 가고 있을지.

아버지는 어쩌다 허리를 다치셨을까.

오래 화투를 치면, 가장 먼저 무릎과 허리가 저려와서

우두둑 관절을 풀며 바라보는 오리 떼, 강가로 몰려갔다

가는 푸른 물길에 소스라치며, 우루루 젖은 뒤뜰로 돌아오고 있다.

 

이 시를 발표하고 나서 모임은 '오리'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리는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오리(), 오리(五里), 오리() 등 해석이 분분하다.

대구시인협회가 대구문인협회장 선거 과정에서 출범했다면, 대구시협 총회(1991531)에서 소외된 회원 때문에 오리들은 반발하여 모두 탈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하여 오리의 내부 결속은 더욱 공고해진다.

 

3.

시오리는 총무 단일 체제이다. 회장도, 부회장도 재무도 없다. 시쳇말로 자율 규제이다. 총무 계보를 홀어보면 오지랖 넓은 한의사 서대현(1988~1989)이 초대총무이다. 뒤이어 박진형(1990), 김선굉(1991), 송재학(1992), 박기섭(1993~1994), 이정환(1995~1996.9), 이유환(1996. 10~1997), 장하빈(1998~2000), 이종문(2001), 김호진(2002~2004), 김세진(2005), 김호진(2006), 서담(2007~현재)순으로 총무가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고문이란 말을 사용한 적은 없지만 이하석. 이동순, 문인수, 문무학 시인은 연장자에 대한 예우로 감투에서 비켜나 뒷짐을 졌다.

 

4.

시인은 오리, 화가는 오리로 통칭된다. 시인과 화가가 어우러져 시와 그림전을 처음연 것은 1992년부터이다. 시와 그림전의 명제는 이하석의 제안으로 '묶인 말과 풀린 색전' 이란 이름을 달고 선을 보인다. 1회 시와 그림전(1992. 2. 26~3. 4)은 두빛갤러리에서 열렸다. 2회 시와 그림전(1993. 5.6~5. 14)은 예지화랑. 3회 시와 그림전(1994. 6. 17~6.24)은 갤러리 큐, 4회 시와 그림전(1995.6.19~6.24)은 개관1주년기념 초대전으로 대우아트홀에서 열렸다. 시와 그림전은 기획 전시였다. 시인과 화가들은 수시로 만나 교분을 쌓았다. 시인은 그림을 보고 시를 쓰고, 화가는 시를 읽고 그림을 그려 전시장에 나란히 걸었다. 네번째 묶인 말과 풀린 색전이 정점이었다. 문인수. 이구락, 이하석, 이동순, 문무학, 김선굉, 이유환, 박기섭, 박진형, 장옥관, 이정환, 송재학, 엄원태, 이종문, 서대현. 장지현, 조기현 등 시인들과 오세두, 이명재, 이수동, 이영철, 이규목, 김창태, 박철호, 권기철, 김성호, 이동엽. 홍창룡, 박종훈, 김서규, 박병구, 김영대, 남춘모 등 화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전시회를 끝내고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포항 오어사와 동해안을 다녀왔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 그리운 시절의 애틋한 이름들이여! 공교롭게도 시 화오리 전시를 하고 나면 다음 해에 어김없이 화랑은 문을 닫았다. 두빛갤러리(삼덕동), 예지화랑(삼덕동), 갤러리 큐(수성교 근처), 대우아트홀(영남일보 14) 모두 그랬다. 기연이라면 기연이다. 텃세가 세었다나 어쨌다나.

 

5.

공식적인 시 · 화오리의 시와 그림전은 네 번으로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만다. 그 뒤 간간히 소그룹 활동이 전개된다. 동원화랑에서 열린 도자기전이나 문인수석전이 그렇다. 또한 문인수, 김선굉, 박진형, 박기섭과 이규목, 홍창룡, 이영철, 권기철이 동원화랑에서 '사인사색전(1997. 12.23 ~12.27)' 을 열었고, 사화집 머리를 구름에 밀어넣자도 출간하였다. 또한 고령 박곡의 이규목 화실에서 화첩을 펼쳐놓고 놀던 모습을 연장하여 예송갤러리 (2006.5.25-5.31)에서 즉석 퍼포먼스를 펼쳐 '화첩 위에서 놀다전' 을 열었다. 문인수, 이하석, 김선굉, 박기섭, 박진형, 이규목, 리홍재, 이영철, 박철호, 권기철 등이 일필휘지하며 기꺼워하다.

 

6.

1999년 겨울에 소식지시오리창간호를 내었다. 신국판, 36쪽의 얄팍한 책자이나 육필시와 권두시론, 신작 시, 비평, 시화, 여행기, 리뷰, 동정란. 이영철 그림읽기 등을 짜임새있게 실어 호평을 받는다. 2호는 2000년 가을에, 3호는 2002년 여름에, 4호는 2003년 겨울에 내고 편집자가 더 이상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책을 낸다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출간된 책을 우송하고 돌려 읽히는 일 또한 번거로웠다. 소식지시오리의 종언도 이와 같은 맥락일 터.

 

7.

·화오리 모임은 이규목 화가의 고령 화실과 이동순 시인의 용성집, 서대현 시인의 고령 농장에서 복사꽃제와 돼지고기 바베큐와 난초와 바둑 따위로 밤을 지새웠다. 이규목 화실은 연말 망년회의 단골집이다. 엽사 40년의 일급 포수인 화가가 잡아온 꿩과 오리, 고라니 고기로 보신하고는 스물여덟시간 뜬눈으로 신기록을 세우며 묵은 해와 새해를 맞고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꽃놀이판도 시들해져 이제 다들 밤이 새기전에 귀가한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시오리 멤버들의 여행벽 또한 유별나다. 초기에는 단체로 다녔으나 언젠가부터 소그룹으로 뿔뿔이 다녔다. 대구 인근에서부터 경주, 남해, 울진 소광리, 동강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티벳, 중국, 몽고, 인도 등 해외여행에서 떠돈 행적이 고스란히 시집과 산문집 속에 보석알로 박혀 있다.

 

8.

시오리 20년의 문학적 성과는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다. 회원들이 펴낸 시집과 산문집, 평론집, 학술서적 등은 어른 키를 훌쩍 넘겨 버렸다. 이하석 시인의 김수영문학상을 필두로 이하석, 송재학, 문인수, 장옥관, 엄원태로 김달진문학상은 이어졌고, 박기섭, 이정환 시인이 중앙시조대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문인수 시인이 미당문학상을, 장옥관 시인이 일연문학상을, 엄원태 시인이 김달진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야흐로 시오리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 시집을 출간한 회원에게 주는 진상품(?)도 총무에 따라 다르다. 첫시집의 경우 기념패를 주었으나 연이은 시집 출간은 기념품으로 대체된다. 도서상품권과 기념품에서 비아그라까지 등장하는 변천사를 겪었다. 이것은 순전히 탑리 약사 김호진 때문이다. 아이고, 저 탑 속에 숨은 사내의 객기라니.

 

9.

시오리와 화오리, 그리고 오늘의 시는 서로 맞물려 가는 수레바퀴처럼 함께 뒹굴면서 험난한 80,90년대를 건너 어느새 중늙은의 나이인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인생이 지리멀렬할진데 문학은 어떤 불꽃을 품고 있어 아직 설레이게 하며 쉼없이 타오르는가. 송재학은 오늘의 시 자선집말미에 장옥관이 없었다면 송재학이 있을 수 있겠는가 송재학이 없었다면 엄원태의 소읍의 미학이 있었겠는가. 엄원태가 없었다면 박진형의 몸의 시학이 있었겠는가. 박진형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장옥관의 섬세함이 빛을 발했겠는가. 지역이라는 한계점 안팎에서 동인들은 한계의 임계성을 어느정도 벗어나서 모두 나름대로의 시의 길을 걸었다."라고 적었다. 이 말은 시오리에게 적용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삼투되면서 문학적 영역을 넓혀 왔 으니까. 앤솔로지 오리 시집을 펴내며 시 오리의 성과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진 시회는 한국문학사 속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다. 김춘수 시인이 대구문학을 사막의 선인장에 비유한 적이있다. 척박한 사막이 피워낸 선인장꽃은 그 어느 꽃보다 화려하다, 시오리 20년의 행적은 대구문학이 피워낸 선인장의 한 붉은 꽃망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자족하지 않으리라. 자신에게 주어진 보폭대로 묵묵히 문학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생이 다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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