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
쇠고기 국물에 밥 말아 후루룩후루룩 넘기거나
삼동추에 고추장으로 슥싹슥싹 비벼내던 그때가 삼삼하지
언제부턴가, 벼룩시장 부동산 광고 낱낱이 훑어보며
설익은 밥 같은 것 잘근잘근 씹어 삼키곤 하지
밥주머니 떼어낸 사람에게 식은 땀 어지럼증 찾아오는
덤핑증후군이라는 놈 탓이겠지만
밥맛이 밥맛이라는 걸 혀끝으로 오래 오래 느껴보잔 셈이지
요, 밥통아!
세상 사람들 이젠 나를 그렇게 부르진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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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 추억
겨울 금호강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들다가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 간 개밥바라기
하얗게 얼어붙은 강어귀에서
모닥불 지펴 놓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뒤, 폭설 내려와
강의 제단에 바쳐지는 눈발 부둥켜안고
모래톱 돌며 齋를 올렸다.
눈 그친 초저녁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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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신발 끌고 현관문 나설 때 화두로 문득 다가오는 山
차 시동 걸거나 신호 대기 중일 때 옆자리 척 걸터앉는 山
낡은 책과 컴퓨터 사이 비집고 들어와 우뚝 솟는 山
저물 녘 산책길 접어들 때 호수 속 고요로 갈앉는 山
발 씻고 저녁 밥상머리 앉을 때 목안에서 울컥 올라오는 山
밤마다 한쪽 가슴 허물어 에굽은 길 스스로 내어주는 山
장하빈/1957년 경북 김천 대덕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7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하다. 시집 「비, 혹은 얼룩말」을 출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