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라는 말
k에게
가령, 너와 나 사이의 연분도
연분홍 봄길 혹은 밀물드는 가을 강가에서
그리움에 기우뚱 저물거나
온 발목 무장 젖어 흘러간 세월 같다.
그리워라 아니로리!
머나먼 스와니강 출렁거려
노랫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금물결 은물결 반짝이다가 또 먹먹하다가
안팎의 경계엔 하많은 뭇별들.
두루 총총 오히려 적막하다 해도
옛날 거닐던 강가에 이슬젖은 풀잎
아리 아라리로 엮는,
산다는 일의 곡절 그 가쁜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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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한나절 무우구덩이를 판다.
삽날 끝에 찍혀 오르는 몇 줌의 흙이
무모하도록 떨어지지 않는다.
허리 굽혀 바닥에 닿을수록
어둠 안쪽에 물기가 배어오는
땅속 깊이 무딘 삽날을 꽃고
잔수염 많은 무우를 다듬어 가나니
바람 들어 상하지 않을 겨울밤을 생각하며
답답하던 언제부턴가
무우는 꼿꼿하게 하늘 쪽을 향해 눕는다.
맹물을 마셔도 목마른 구덩이 곁에서
깊고 은밀하게 그것들을 묻으며
나도 우멍한 구덩이로 누워
안전하게 겨울을 나는 방법의
시작과 끝을 한 백 번쯤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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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흐린 날
할일없이 담배를 태운다.
바둑이가 짖으며 내닫은 길 위로
아무도 한 번 가고는 오지 않는다.
구겨진 은박지 속에서는
아이들과 새들의 숨바꼭질이 한창인데
흐려지는 얼굴로 문득
그해 여름 맨드라미꽃 지고 있다.
먹다 밀쳐 둔 수제비 같은
유년의 운동장 가에는
분홍의 바람개비 저 혼자 돌아가고,
잃어버린 사방치기 돌
희미한 기억처럼 빛을 뒹기고 있다.
아련하여라
줄레줄레
아직도 국기 게양대 옆 미루나무 잎사귀는
저요 저요 선생님 저요! 잎잎이 눈부신데
사라지는 담배연기 너머로
세상의 길은 구불구불 푸르게 뻗어만 갔다.
이무열/대구에서 태어나 대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다.
1996년 <대구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건널목 있는 풍경」,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울음 잡는 아저씨」가 당선되어 등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