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코의 시간
중년 사내의 끓아떨어진 잠을 듣는다
황소 한 마리, 우악스레 몰고 가며
산 하난 족히 들썩거릴 소 울음소리 낸다.
쉰다는 잠에까지 저 깊은 잠으로까지
버거운 짐 싣고 가서 되새김질하고 있다
가끔은 숨도 멈추고 뒤척대기도 하면서.
사내의 깊은 잠은 코에게 준 발언 시간
목구멍에 걸려걸려 뱉아내지 못하고
살렸구 살아볼렸구 삼켰던 말 쏟는 것.
아무렴 알고 말고 말로 하지 않아도
고달픈 그 만큼씩 거세지는 코청의 떨림
털어야 털어버려야 다시 서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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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늪
-우포에서
고
랐
올
떠
몃
슬
치
만
저
은
달
늪
은
끝
모
르
게
슬
쩍
갈
앉
았
다
은근하게 달빛이 늪의 안을 헤집지만
끝 모를 그의 깊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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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추에 관한 연상
만약에 네가 풀이 아니고 새라면
네 가는 울음소리는 분명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울고 말거다 비비추 비비추
그러나 너는 울 수 없어서 울 수가 없어서
꽃대궁 길게 뽑아 연보랏빛 종을 달고
비비추 그 소리로 한번 덜고 싶은 게다 비비추
그래 네가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떨면서
눈물나게 연한 보랏빛 그 종을 흔들면
잊었던 얼굴 하나가 눈 비비며 다가선다.
문무학/1949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82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1988년 「시조문학」에 문학평론이 천료되어 등단하다. 시조집 「가을거문고」, 「설사 슬픔이거나 절망이더라도」, 「눈물은 일어선다」. 「달과 높」. 「벙어리뻐꾸기」 등 출간하다. 현대시조문학상, 유동문학상,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