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 보다
***
눈
신축
공사장의
모닥불에 내리는 눈
그것이 불인 줄을 꿈에도 모른 채로,
무심코 내린다는 게
그만 거기 내리는
눈
신축
공사장의
모닥불에 내리는 눈
그것이 불인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피치 못해
내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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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
7박8일 동안 휴가를 보낸 뒤에 돌아오니 선풍기가 강풍으로 돌고 있다.
발로다. 툭, 하고 끄니, 그제서야 멈춘다.
아아, 그 긴 낮을, 그 칠흑 같은 밤을, 그 정말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 돌아갔을,
가여운 너 선풍기야, 발로 꺼서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도 혹시 누군가가 발로다 켠, 그것도 강풍으로 켠 선풍기가 아닐까 몰라
켜놓고 우주 일주의 먼 여행을 떠나버린,
켜놓고 우주 일주의 여행을 떠나버려 긴긴 날 긴긴 해를 미친 듯이 돌아가다.
돌아와 발로 툭, 끄면 그제서야 멈춰서는.
이종문/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다. <역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10권의 사화집을 간행한 바 있으며, 시집으로 「저녁밥 찾는 소리」. 「봄날도 환한 몸날」을 출간하다. 중앙시조대상신인상, 대구시조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