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통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카드가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너에게 전화를 한다.
잠시 전화기 앞에 섰다가 돌아서서
두 개의 동전을 넣고 자판기의 버튼을 누른다.
흰 종이컵이 먼저.
그리고 뜨거운 커피가 흘러 잔을 채운다.
가을 탓인가.
나는 그 따스함을 두 손으로 즐긴다.
다시 부스 안으로 들어서서 카드를 꽃는다.
신호가 가는 동안 또 한 모금의 커피를 마신다.
부스의 유리 너머로
가을의 하늘은 높고 푸르며
가까이서 몇 잎의 은행이 노랗게 진다.
- 여보세요,
수백리 밖에서 달려온 음성이 귀를 때린다.
카드의 힘으로!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며
식은 커피로 마른 입술을 적신다.
마그네틱 카드가 이룩해 나가는 사랑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