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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무사하기를 빈다

 

아직 어두운 현관에는 조간이 와 있었다.

그걸 소파 위로 던져두고 문을 연다.

나는 오늘 긴 아침을 갖게 될 것이다.

이마에 와 부딪는 벚나무 잔가지를 목장갑으로 걷어내며

국립대학의 늙은 교정을 느리게 걸어나가면서,

사랑은 마치 절후처럼

어김없이 내 앞에 서는 그리움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전 잠든 아이들의 이마를 짚어주던 손으로

나는 지금 너의 무사를 빌고 있다.

짙은 입김으로 薄明의 찬 하늘을 밀어내며,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추운 겨울의 이른 새벽을 느리게 걸어나가는

써늘한 기쁨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의 이마는 따스했다.

그대, 이런 미열의 새벽을 열고 오래 걸어나가며

산다는 것은 견딤 이상임을 깨닫는다.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견딤 이상인 것 같다.

거친 벗나무의 추운 가지 사이로

좀 더 환한 얼굴의 아침이 오고,

나는 이 길을 되짚어 언 볼과 더운 입김으로 돌아가리라.

강한 잉크 냄새를 맡으며

신문의 굵은 활자들을 일별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활자들 사이로 트인 길고 가파른 길을

또 하루 걸어갈 것이다.

내가 지금 널 사랑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모르지만

그대, 무사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