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강
-이동희 선생께 드리는 서간
오래 소식 드리지 못했읍니다.
요즈음은 참 자주
긴 강가에 몸을 세우는 일이 있읍니다.
나는 이쯤 서고
강은 스스로 흘러갈 뿐이어서
마른 가슴을 적실 수가 없읍니다.
그동안 안녕히 안녕히 계시는지요.
키 큰 미류나무 사이로 강이 보이고
가을이 끝나가는 빈 들판 너머로
임수동 작은 마을이 보입니다.
잠시 눈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는 나의 사랑이 작아서
안타까이 푸른 강으로 눈을 줍니다.
강물은 기슭과 마른 나무 잔가지를 적시며
먼 그의 정처로 흘러가고
발목이 가는 물새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가
좋은 풍경을 만들고 있읍니다.
아마 어떤 모습으로 나도 흐르고 있을 터이지만
흐르는 강물에 올이 굵은 턱수염을 기르면서
뒷물이 앞물을 밀어
이윽고 서로 섞이는 긴 강가에 서서
아무 표정 없는 내 모양과
제 가슴에 길게 널리는 노을을 보아 주십시오.
노을로 타오르지 못하는 빈 가슴으로
어느 긴 강가에서 내 홀로 확실히 외롭듯이
어느 긴 강가에서 국경처럼 늠름히
안녕히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