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기
사흘째 신문을 보지 않는다.
요즈음은 가장 굵고 튼튼한 활자도 불안하다.
무엇을 믿을 수 없는 쓸쓸한 믿음.
저기 습관의 봄이 오고 있다.
날이 흐리고 지금 세상 가득히 눈이 내려
나는 국립대학의 뜰이 내려다 보이는 복현동 언덕에서
집으로 가는 가장 쉽고 단순한
길을 잃는다.
흰눈 거듭 내려 세상은 이제 희고 정직하므로
내 구태여 길을 찾지 않아도 되리.
어두운 석간으로 날은 늘 일찍 저물고 밤이 길어도
희고 눈부신 적설 위에
스스로 정직한 활자가 되어
뚜렷이 놓일 수 있기를 바란다.
길은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될 것이므로
여원 어깨에 눈을 얹으며
아주 쉽게 네게 이를 수 있을 것이므로
키낮은 측백을 곁에 서서 오래 눈을 맞으며
나는 참으로 즐겁게
네게로 가는 길을 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