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에 관한 보고서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수억만 송이의 달맞이꽃들이
사문진교 부근 낙동강 십리 제방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 놈들의 꼬라지를 가만히 보면
껑충한 키에. 휘휘 내저은 팔에,
되고마고 뜯어붙인 이파리에 촌닭도 그런 촌닭이 없습니다.
녀석들이 밤이 되면 손에 손에 오촉 내지 십촉짜리 꼬마 알전구 있는 대로 켜드는데요.
그 불빛이 강물에 거꾸로 비쳐 일렁이며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자정을 막 넘긴 어둠을 틈타서.
이 녀석들 눈치 못 채게 전조등을 끈 채 느리게 차를몰았습니다.
이 녀석들은 저들의 유일한 빽인 달도 없는 캄캄한 밤중에 기가 포옥 죽은 채,
못 생긴 몸뚱아리를 서로 기대고 잠을 자고 있었지요.
제일 많이 모여서 뒤죽박죽 잠자고 있는 녀석들 앞으로 가서 하이빔을 화악 켜버렸지요.
그런데 이 녀석들이 순식간에 노란 알전구를 모조리 점등시켜 활칵 나를 덥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어떻게 그리 빨리, 일제히 불을 켜드는지 되게 놀랐습니다.
하이빔을 켜둔 채 차에서 내려 이 놈들 곁으로 가보았더니,
글쎄, 그게 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부수어 홑뿌린 달빛 부스러기였습니다.
달이 내려다보니,
제 핏줄인 달맞이꽃의 모양이 하도 기막혀서,
제 몸을 뭉텅 떼내어 그걸 잘게 부수어서 마구 뿌려준 것이었습니다.
뿌려준 김에 그걸 한참 놓아둔 것뿐인데,
이 녀석들이 그거 다 저들이 꽃피운 것인 줄 알고,
천방지축 어깨를 들썩이며 으시대는 것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하여 고개를 돌려 눈을 드니,
저어기 팔공산 아래, 무태 부근 금호강 위에,
제 몸을 너무 많이 부순 스무이렛날 하현달이 실눈을 뜨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녀석들이 측은하기도 하려니와 우선은 영롱하고 어여뻐서 전조등을 오래도록 켜 두었습니다.
숨죽여 흐르던 강물이 이 밤중에 무슨 일인가 하고 이리로 물길을 획 돌렸는데,
그 바람에 노란 알전구들이 마구 흔들리면서,
불의 물결이 몇 번 출렁. 했습니다.